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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리고 여가/책읽는사람들

[책] 난주, 제주의 숨소리를 새롭게 느끼게 만든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삶의 기구한 숨결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제주는 알수록 가슴을 저미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이제 제주 4.3항쟁의 역사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봄이 되면 제주를 찾을때 꼭 평화박물관이라든가 알뜨르 비행장 같은 현대사의 질곡이 오롯이 남은 제주의 상처들을 마주해 보곤 한다.

그런데 이제 제주에 가면 <난주>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겨우 3월이지만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될 <난주>를 읽고 난다면 누구나 가슴아린 역사의 숨결을 기억하며 제주에 방문하게 되리라...

조선말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남편을 잃고 사랑하는 아들과도 수십년 생이별 속에 살아온 난주라는 한 여성이 제주로 유배되며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신앙적 신념과 헌신하는 삶을 그린 이 소설은 종교적인 소설의 범주를 넘어서 이 땅에서 살아온 민중의 한 맺힌 삶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같다.

조선말 무능한 지배계급과 착취에 앞장선 관료들의 폭정에 처참하게 짓이겨진 민중의 삶을 제주 섬 사람들의 삶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혹독한 민중의 삶 속에 양반가의 딸로 자란 여성이 자신의 의식을 노비의 삶에 일치시켜 가는 과정은 신분, 계급을 뛰어 넘는 숭고함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더불어 지지고 볶는 민중의 삶, 늘 혹독하기만 했을 민중의 삶에 스며있는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난주가 제주로 유배를 떠나 처참한 민중의 삶을 목격하는 목격자에 그치지 않고 자신 스스로 노비의 신분에서 신분만이 아닌 삶을 통째로 민중의 삶으로 바꿔 나가는 억척스러움, 그렇게 고된 노동으로 살아온 이 땅의 모든 위대한 앞선 세대의 삶에 찬를 보내게 된다.

 

 

코로나19로 이번 봄 제주에 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책장 하나 하나를 넘길때마다 눈물 없이 넘길 수 없는 민중의 삶에, 어머니의 삶에, 민중에게 헌신하는 여성의 삶에 잠시 이 봄의 혹독한 전염병 경고를 잊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서 코로나19에 질식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되찾아 갈 수 있을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거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정난주 마리아의 고단했지만 숭고했던 삶과 제주의 아름다운 봄 바다와 바람을 책속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유채꽃 흐드러진 제주의 대정읍 언저리에서 하염 없이 바다를 바라봤을 정난주를 생각해 보고 그 숨결을 느껴 보고 싶지만 이번 봄 제주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이 책으로 충분히 달랠수 있었기에 너무 감사한 책이다.

끝으로 저자 김소윤의 맛깔나는 화법은 현대판 조선소설을 읽는 듯한 생글생글한 글맛이 읽는 내내 조정래 작가의 그 글맛에 견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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