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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615의 세상 이야기/사회와 여론 & 이슈

4.19 49주년, 역사를 계승하는 이들과 계란에 얼룩진 한나라당


4월 혁명 49주년을 맞는 수유리 4.19 국립묘지는 참배객들로 아침부터 무척 혼잡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국가보훈처 주관의 공식 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참배객들이 국립묘지를 찾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4.19 국립묘지는 북한산 등산로 입구이기도하여 참배를 겸한 등반객들도 일요일 아침시간인데도 많이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현수막

민주노동당 현수막


그러나 국립묘지 주변이 진짜 어수선했던 이유는 몇가지 더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한나라당 강북 당원협의회 명의의 현수막이었습니다. 다른 단체와 정당의 현수막이 단정하게 걸려있는 것과는 달리 한나라당이 내건 현수막은 누군가에 의해 이미 계란세례를 받았습니다.

한나라당의 현수막

계란에 얼룩진 한나라당 현수막


4.19 국립묘지 입구에 한나라당의 현수막이 걸린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역시나 민심은 현수막을 곱게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4.19 국립묘지에서 걸어나오는 군복의 노인들이었습니다. 4.19 혁명과 군복이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우회 하는 식의 여러 단체들이 방문했고 4.19 49주년 행사장에까지 군복을 입고 들어섰던 것 같습니다. 현충일도 아니고 4.19의 역사적 의의를 생각해 봐도 그렇고 그곳에서 만난 군복은 그리 반갑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은 역시나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화환이었습니다.
이제는 국가기념행사이다 보니 당연한 듯 하면서도 과연 그들에게 4.19란 무엇인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정부주관 기념식이 끝날 무렵부터는 민족민주단체의 원로 선생님들과 사회단체 상근간부들을 비롯한 진보진영 회원들이 정문앞에 속속 도착하였습니다. 낮12시에 예정된 4월 혁명회와 한국진보연대 주최의 민족민주단체 합동 참배식 참가를 위해 도착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족민주단체 합동 참배식에는 4월 혁명회와 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하여 많은 원로통일애국인사들과 청년, 학생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민족민주단체 합동 참배식에서는 각계 인사들의 기념사와 결의를 들어보는 시간들이 있었고 이어서 헌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온 한통련 성원들은 한통련 의장이 공항에서 국정원에 의해 억류된 상황에서도 참배식에 함께 하기 위해 참가하였고, 한통련 의장의 기념사를 대독하기도 하였습니다.

임성규 민주노총위원장

박남익 한통련중앙본부조직국장

정동익 4월혁명회 상임의장



민족민주단체 합동참배식에 참가한 이들은 "4월혁명 정신으로 역사반동의 시대를 끝장내자"라는 4월혁명 49주년 선언을 하였습니다. 선언문에서는 독재정권의 망령이 다시 활개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며, 그동안 순조롭게 발전하던 남북관계가 군사적 충돌의 위기에 처했고, 민중생존권은 벼랑으로 내몰렸으며, 장기집권을 위한 반민주 책동이 자행되는 현실을 우려하였습니다. 참가자들은 이러한 시국인식하에 미증유의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4월혁명, 6월민주항쟁의 정신으로 투쟁에 나서는 길밖에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역사반동의 시대를 끝장내고, 자주 민주 통일을 향해 매진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2010년 4.19 50주년에는 성대하고 뜻깊은 기념식을 기약하며 민족민주단체 합동참배식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4.19 49주년을 맞은 4.19 국립묘지는 오후까지도 많은 사회단체들과 시민들, 가족과 함께 온 어린아이들까지 참배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깊이 숙여 49년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아낌 없이 자신의 한 생을 희생한 선열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늦은 시각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에게 민주주의 수호의 꽃씨를 나눠주며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우자는 한 사회단체의 홍보에 많은 시민들이 호응하였던 것은 여전히 국민들의 마음속에 4.19정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날의 혁명이 미완이듯, 우리가 이루어야 할 4.19정신의 과제는 국립묘지 곳곳에서 현수막으로, 군복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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