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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615의 세상 이야기/사회와 여론 & 이슈

다시 '교투(교문투쟁)'를 하란 말인가!


신고제인 집시법이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합법적인 집회와 시위마저 철저히 봉쇄되다시피하면서 독재시절 '교투'가 회자되고 있다.

최근 경찰의 주요 도심집회 불허와 탄압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비판과 항의가 많다.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는 철저히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월6일 한국진보연대가 개최하려던 명동 중앙우체국 앞의 집회는 전날 급작스레 불허가 되었다. 경찰은 이날 중앙우체국앞만이 아니라 명동 중심가까지 전투경찰을 배치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을 정도다. 같은날 광화문 동화면세점앞에서는 비정규직 권리선언을 위한 노동자집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경찰의 노골적인 집회 방해가 이루어졌고, 참가자들의 말에 따르면 경찰은 전투경찰을 집회대열과 함께 섞어서 사실상 집회가 진행되질 못하도록 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또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청년단체 회원들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런데 이곳도 경찰은 전투경찰을 기자회견 참가자들과 섞어서 행사를 방해하고, 국회의원까지 지지하고 참석한 행사장에 난입하여 플랑을 빼앗는등 상식 이하의 작태를 보였다.
뿐만 아니다. 12월13일 주말에도 경찰의 이러한 과잉 대처는 이어졌다. 반신자유주의 반이명박 투쟁을 위한 서울지역 1차 공동행동이 주최한 집회를 행진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불허하였고, 그나마 보신각에서 청계광장까지의 짧은 집회와 행진 신고도 접수후 전날 불허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결국 공동행동측은 청계광장 주변 한켠에 자리를 잡아 집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같은 날 보신각에서는 8주째 진행해오고 있는 촛불노래방에 경찰이 난입해서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이유는 노래방도 정치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지난13일 보신각 촛불노래방에 난입한 경찰

지난 2주간 많이 알려진 사실만 열거해도 너무나 많으며, 그 외에도 현재 서울 도심에서의 행진 및 대규모 집회는 사실상 개최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가능하다면 경찰이 철저히 통제하기가 쉽고, 교통방해가 적다고 판단하는 여의도 광장이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정도가 열려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집회 시위에 대한 경찰과 당국의 탄압과 대응이 도를 넘어서고 있으며, 헌번에 보장된 합법적인 권리 행사 마저도 봉쇄당하는 상황에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서울 도심에선 어떠한 집회도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결국 독재시절의 교문투쟁이 부활될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독재정권시절 유난히 교문투쟁이 많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집회를 많이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집회 시위에 대한 자유가 철저히 차단당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집회 및 행사의 장소가 대학구내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정에서 집회를 하고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교문을 나서는 과정에서 이를 봉쇄하려는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이 바로 '교투'로 지칭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고통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교문투쟁은 독재정권에 의해 봉쇄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고, 동시에 최소한의 정치적 의사표현이었기에 절박했다. 그만큼 격렬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독재정권시절 '교투'과정에서 희생된 젊은 청춘, 열사가 유난히도 많다. 87년 6월 항쟁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이한열 열사도 연세대 정문에서 진행된 교투 과정에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아 결국 죽음에 이른 것이었다. 91년 강경대열사의 죽음은 아예 경찰의 쇠파이프와 곤봉에 맞아 생긴일이었고, 97년 조선대 류재을 열사의 죽음도 그러했다.

이뿐 아니다. 어렵게 삼삼오오 교문을 벗어나 시내로 진출해도 경찰의 폭압적인 탄압은 마찬가지였다. 성균관대 김귀정열사의 죽음도 경찰의 무리한 토끼몰이식 진압에 의한 희생이었고, 등록금 문제를 알리고자 했던 대학생들의 집회가 철저히 봉쇄당하던 96년 봄 가두시위에서 희생된 연세대 노수석 열사의 죽음도 그러한 경우이다.

이한열열사

최소한의 민주주의란 그래서 너무나 중요한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의 기억속에 살아있는 그 많은 열사들이 집회시위,결사의 자유만이라도 있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면 열사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억될리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의 공안탄압을 독재로의 회귀라고 많은 국민들이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는 중년층이상 보수적 국민들조차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을 옹호하는 이들은 여전히 철저한 제한만을 강조하고 있으며, 오히려 국회에서 복면금지법 등 온갖 공안통치용 법안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결국 이명박 정권의 공안탄압, 독재회귀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조차 가로막는 것이며, 그로하여 독재시절 많은 희생을 치루게 만든 교투를 부활시키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이명박 정권의 독재회귀, 민주말살에 맞서 저항하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되고 있으며, 그것은 또다른 열사를 절대로 만들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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