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모처럼의 포스팅입니다.
이번 내용은 지난 2월 8일에 있었던 한 기자회견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좀 뜬금없는 얘기부터 하면 1965년 박정희 정권은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일회담을 추진하게 됩니다. 당시 국민들의 반발이 얼마나 심했는지 65년 7차회담은 위수령과 계엄령속에서 열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하튼 박정희 정권은 일본까지 건너가 일본총리관저에서 최종협상을 마무리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익히 들어온 한일협정이라는 것이 탄생합니다. 대체로 무상3억불의 경제지원을 약속받고 제대로 된 사죄조차 받지 못한 협상이었다는 것이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좀 다르게 경제발전이 절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입장이 다르더라도 일단 결과물은 나온 상태입니다.
지난 2월 8일 기자회견은 이런 '한일협정'문서를 공개하라는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기자회견은 한국정부를 상대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외상 오카다의 방한에 즈음해서 열렸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5년 관련문서를 공개한 상태인데,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도 부분적인 공개만하고 유독 청구권 문제, 독도 문제 등에 대해서는 공개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은 일제피해자단체총연합회,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재일)일한회담문서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에서 개최했습니다.
빨간 목도리를 하신 분이 양금덕 할머니이십니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단체의 이름만 들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실 것 같은데요. 기자회견의 주요 내용은 일본 정부가 과거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진정 그렇다면 문서를 공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문서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는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서 많이 알려진 99엔 사건 같은 문제도 포함되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65년 한일협정을 통해서 3억불 지원을 했고 자신들의 할 일은 다 했다는 식입니다. 때문에 각종 청구권 소송에서도 매번 일본 재판부는 원고 패소 결정을 해온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동안 공개된 문서를 통해서 마치 청구권 문제도 다 처리된 것처럼 이해하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는 제대로 다루어진 적도 없으며, 일본 스스로도 한국정부에 지금은 무상자금은 경제협력자금이라고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청구권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일본 외상이 지난 2월 10일 한국을 방문해서 자신들의 과거사를 사죄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정부도 일본 현 정권이 겪는 어려움을 고려할 때 이러한 발언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위와 같은 경과를 두고 보자면 참, 얼빠진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2월 8일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82세의 양금덕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도 직접 참가했습니다. 할머니의 굵은 주름에서 그동안 겪었을 고통의 무게를 조금은 짐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직사할 수 있다는 일본정부와 대일 자주외교를 하겠다는 한국정부의 자세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이상, 반세기를 훌쩍 넘어버린 과거사의 해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고통으로 우리에게 남을 것이며, 후손들에게 짐이 될 것입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3.1절입니다.
이번 3.13절이 매년 찾아오는 3.1절 같지 않은 것은 국치100년이 되는 올 해, 진정으로 우리의 자주권과 민족적 자존심을 바로 세워야 할 현실적 이유가 이번 기자회견에서 밝혀진 것처럼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하고도 이제서야 포스팅을 하게 되어 많은 분들에게 참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일본의 침략을 사죄하게 만들고 우리의 대일 자주외교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께도 큰 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근로정신대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시민모임(http://cafe.daum.net/1945-815) 카페가 있습니다.
끝으로 저의 지식과 이해가 짧아 다소 틀린부분,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많은 지적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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