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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리고 여가/사진으로 하는 이야기

잘써진 글씨에는 예의를 지키고 싶어진다

2주전쯤 주말 가까운 후배들과 함께 안국동에서 삼청동에 이르는 골목길 출사를 다녀왔습니다. 하이엔드 똑딱이를 들고 모처럼의 출사였고, 고등학교 시절이후로 가본적이 없는 코스여서 뭐 찍을게 있을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습니다.

최근 디카족들의 출사성지처럼 되었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혀 지나다닐 생각도 안해보던 골목길이 이번에 가보니 사람들로 가득하고 아기자기한 상점들로 넘쳐나더군요.
생소하고 신기하면서도 예전 한적하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시절의 골목길은 이제 자취를 감춰버린것 같은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이리 저리 사진기를 들이대다가 문득 너무 예쁜 글씨를 만났습니다.
모두들 상점의 이쁜 간판과 아날로그적인 정취를 담는데 열중이었는데 골목 입구에 세워진 작은 팻말하나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뭐 특별할 것도 없는 팻말은 "주차금지-골목주민일동-"이라는 팻말이었습니다.
이 별 보잘것도 없어 보이는 팻말에 제가 압도된 것은 팻말의 글씨체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서예를 전공하거나 배우보신분들의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냐 하시겠지만 제가 그동안 본 길거리 낙서같은 팻말중에서 이 팻말처럼 성의있고, 단정한 글씨의 팻말은 찾아본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제 짝궁이 서예를 좀 하고 옆에서 자주 글을 감상해서 그런거겠지만 다소 높아진 저의 수준에서 글씨를 보아도 참 단정하고 글쓴이의 정성이 담긴 글씨였습니다. 획이 고르고 반듯하며, 막 갈겨쓴 글씨가 아니라 명조체에 가까운 삐침으로 예쁘게 마무리된 팻말글씨가 제법 손글씨의 맛이 나는 글씨였습니다.

차를 가지고 골목길에 들어선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골목길 주민들이 자동차나 오토바이 또는 많은 방문객들의 소음에 지쳐있었음을 느끼게도 했습니다.
그런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글씨체가 다소 위협적이거나, 딱딱한 글씨체를 그저 쉽게 휘갈겨쓰고 말았을 법도 한데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글씨에서 보여지는 주민들의 마음은 바르고, 정렬되어진 모습처럼 우리들에게도 질서와 단정한 아름다움을 바라는 마음을 내비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기에 잘써진 글씨앞에 자연스레 예의를 지키고 싶어졌습니다.

출사에서 좋은 사진을 건지지도 찍지도 못했지만 좋은 글씨를 만나것 만으로도 큰 기쁨이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주차금지 팻말-클릭하시면 조금 더 큰 사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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