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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615의 세상 이야기/사회와 여론 & 이슈

사람이기에 망루에 올았고, 사람이기에 1년간을 싸웠다.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2010년 1월 9일, 지난 해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어느 덧 355일이 지난 시점이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순천향 병원에서 발인식을 마친 열사들의 운구가 도착하고 5천여 국민들의 애도속에 장례가 진행되었다.

서울역 광장은 수많은 만장과 추모리본을 단 시민들로 가득 찼다. 어디를 둘러봐도 비통한 심정의 시민들이 열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기 위해 광장을 빈틈없이 메웠다.

이강실, 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의 개식사로 시작된 장례에서는 355일에 걸치는 그동안의 투쟁이 보고되었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비롯한 각계의 여러 인사들이 조사를 했다. 특히 백발의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열사들을 추모하며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며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정환 시인은 조시 '서울특별시 용산 4지구, 남일당, 355일, 쉿, 쉿, 바람소리'를 통해서 산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라는 추모의 시를 바쳤다.

조사를 하는 각계 정당, 인사들은 한결같이 지난 용산참사는 이명박 정권에 의해 타살된 것이라며, 열사들의 장례를 지금 치루지만 앞으로 더이상 재개발에 의해서 사람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 나가자는 것을 호소했다.

장례식 마직막에는 유가족들이 올라와 인사를 했다. 1년이 다 되도록 상복을 벗지 못했던 유가족들은 국민들에게 감사드리고 남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꼭 끝까지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장례를 마무리하고 용산참사현장까지 노제를 위해 참가자들은 행진을 했다.

용산 남일당 현장에서 진행된 노제에서는 그동안 유가족들과 동거동락하며 누구보다 함께 싸워온 문정현 신부가 조사를 했다. 문정현 신부 역시 정권의 몰상식한 탄압과 대응을 규탄하며 앞으로도 꼭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워 나갈 것을 호소했고, 더불어 유가족과 참가자들에게 그럼에도 우리는 승리했다며 힘주어 말했다.



유가족들의 감사인사와 다짐의 말을 끝으로 노제를 마무리한 장례위원회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있을 하관식을 위해 출발했고 밤9시경 355일에 이르는 열사의 한을 풀기 위한 싸움의 첫단추를 채웠다.

이날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과 유가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도 있었다. 경찰은 열사의 마지막 가는길도 전투경찰을 동원해 방패로 시민들을 밀기도 해 항의를 받았고, 보수국민연합 등 극우보수단체들은 서울역광장 주변에서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열사로 칭하고 국민장을 하는 것에 반발에 함성과 구호를 외치는 등 패륜적인 항의 기자회견으로 장례를 방해해 시민들의 많은 항의를 받기도 했다.

  
용산범국민대책위는 앞으로 남일당앞 농성장을 25일까지 유지하고 이후 자진철거한다고 밝혔다.



 
-용산참사 민중열사 장례 유가족 인사 전문-
 
영결식 유가족 인사: 고 이상림 열사 부인 전재숙 여사

안녕하세요, 저는 고 이상림씨의 처 전재숙입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역광장을 가득 메워주신 여러분께, 다섯 유가족을 대표해서 인사드립니다. 국민 여러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저희는 이 자리에 설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고인들의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함께 배웅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덕분에 장례를 치르게 되어 오랜만에 다섯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아버지 영전에 절 한번 올리지 못한 우리 막내도 감방에서 잠시 돌아와 상주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개월이 지나도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아이들도, 군대와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텅 빈 영안실도, 뻥 뚫린 가슴도, 조금이나마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막상 돌아가신 분들을 땅에 묻으려니, 또다시 가슴에 찬바람이 휑하고 지나갑니다. 갖가지 회한이 밀려옵니다.

어제 정운찬 국무총리가 영안실을 찾아 왔습니다.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유가족이 마음을 열고 양보해 줘서 감사하다고도 했습니다.

진작 보낼 것이었다면 왜 1년이나 끌어왔습니까? 화마에 불타고 칼에 찢겨진 내 남편, 내 아버지의 시신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생지옥에서 살아야 했던 저희 유가족들을 왜 1년이나 외면하셨나요? 2009년 마지막 그날까지 사과 한 마디 하기가 그렇게 어려우셨나요?

고인들을 더 이상 차가운 냉동고에 둘 수 없어서 힘든 결심을 한 유가족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애써 못 본 척 못 들은 척 했지만, 지난 1년 전 고인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몰아붙인 기억들이 되살아나 마음이 참으로 편치 않았습니다. 고인들의 육신은 땅에 묻어드릴 수 있겠지만, 테러범,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땅바닥에 떨어진 고인들의 명예는 앞으로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충연이도 오늘 아버지를 묻고 나면 다시 감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옥 같던 불구덩이에서 뛰어내리다 다친 허리와 다리가 낫지 않아서, 상중에도 계속 침을 맞고 진통제를 먹어야 했습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어릴 적 못 먹어서 가뜩이나 자그마한 막내가, 신혼 초에 생이별을 하고 다리를 절뚝이며, 언제 나올지 기약도 없이 차가운 감방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걸 보는 이 못난 어미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어미의 마음은 곧 동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남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알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저 높은 망루에 올랐던 동지들이 오늘도 감방에 있습니다.

저희 유가족은 오늘 고인들을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묻습니다. 지금까지 국민 여러분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은 저희 유가족, 앞으로 갈 길이 멀기에 다시 한 번 염치불구하고 당부 드립니다.

돌아가신 분들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진실을 밝혀서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세요.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차가운 감방에 갇힌 내 아들, 우리의 동지들이 하루빨리 무죄로 풀려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주세요.

그리고 우리와 같은 철거민들이 이 땅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 저 위태로운 하늘 끝 망루로 오르는 일이 없도록 이 잘못된 재개발을 바로 잡아 주세요. 없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저희 유가족, 국민 여러분이 베풀어주신 은혜 잊지 않고 꿋꿋이 살겠습니다. 그 은혜 갚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1월 9일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유가족 일동
  

노제 유가족 인사: 고 이성수 열사 부인 권명숙

애 아빠가 일년 만에 용산에 돌아왔습니다. 불타고 녹슨 망루처럼, 할퀴어진 건물들처럼, 을씨년스러운 겨울바람처럼. 검게 그을리고, 갈가리 찢기고, 차갑게 얼어붙은 남편의 시신이 한 서린 용산에 왔습니다.

2009년 1월 20일, 무엇이 그리 두려웠나요? 왜 시신을 도둑질해서 갈기갈기 찢어놓고 버렸습니까... 육신을 더럽혔으면 명예라도 깨끗이 씻겨줘야지요, 어찌하여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몰아부쳤답니까. 그 한 많은 영령이 어떻게 눈을 감으라고 이런 잘못을 저질렀답니까.

어제 시신을 관에 모셨습니다. 그동안 저 차가운 냉동고에서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요? 위령굿을 지내던 날, 만신님의 입을 빌어 ‘추워, 추워’라고 절규하던 애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선선합니다. 그동안 하도 많이 울어서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있을까 했는데, 이것이 마지막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왔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지만, 냉동고에 계실 때는 시신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진과 기억으로밖에 볼 수 없는 당신...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당신...

그 마지막 모습은 왜 그리 가녀리답니까? “아버지가 왜 이렇게 작아? 애기 같아...”라며 아이는 말문을 닫지 못합니다. 정말이지, 화마에 불타서 남편의 다리는 젓가락 같았습니다. 수의를 입혀드리고 흰 천으로 염습을 해도 그 모습은 너무나 왜소했습니다. 다시 한 번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차마 화장은 하지 못했습니다. 불구덩이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다시 한 번 불길로 모시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1년 만에 집에 돌아간다 한들 전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애 아버지 없이 어떻게 생활을 이어갈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돌아갈 집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이 용기를 주셔서 정신과 치료를 마치면 빌딩 청소라도 해서 아이들 가르치겠다고 굳게 마음 먹어봅니다. 하지만 텅 빈 방 한구석에 자리 잡은 내 남편, 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쉽사리 씻을 수야 없겠지요.

다행히도 지난 일 년 동안 아이들이 훌쩍 자랐습니다. 아버지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입대했던 큰 아들이 조문객을 받는 모습을 보니, 정말 이제는 어른이 다 됐구나 하는 생각에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렇게 예쁘게 컸는데, 아빠가 그 모습을 못 보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용산을 뒤로 하고 떠나려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남편의 원혼이 서린 남일당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이렇게 정리하고 떠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호시탐탐 저희가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을 보면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우리가 용산을 떠난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곳을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지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 이곳에 살았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화려한 용산을 만들겠지요.

반쪽짜리 장례가 아니었다면 한결 마음을 내려놓을 텐데, 가난을 힘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정부, 사람의 목숨 앞에서 자존심 따지는 정부가 너무 야속합니다. 많이 늦고 아쉬운 점이 많지만, 어쨌든 정운찬 총리가 정부를 대표해서 사과하시니 그 마음 고맙게 받겠습니다. 총리가 어제 사과하고 약속하셨듯이, 정부는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시기 바랍니다. 또 너무 섣부른 재개발로 없는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지 않았으면 합니다. 꼭 약속 지켜주세요.

이제 국민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아서 너무 다행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까 두려웠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 저희 유가족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범대위, 신부님-수녀님, 목사님, 국회의원님, 문화예술인, 레아식구들, 용산을 잊지 않은 시민들... 지난 1년간 이 나라 정부가 버린 저희들을, 집도 절도 갈 곳 없는 저희들을, 따뜻이 보살펴주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희 유가족도 여러분 믿고 끝까지 싸워서 그 고마움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2010년 1월 9일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유가족을 대표해서 권명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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