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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615의 세상 이야기/사회와 여론 & 이슈

여의도에서 농민들이 탈곡한 사연



-11월 17일 전국농민대회 스케치-

전국농민대회가 지난 17일 여의도 광장에서 진행됐습니다.

바람이 심하고 매서운 기습 한파가 시작되던 17일,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들어서자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관광버스가 길게 늘어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뉴스에서만 보던 쌀대란이 여의도에 들어서자 늘어선 관광버스의 숫자만으로도 실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2시에 시작하는 전국농민대회를 위해서 전국에서 올라온 농민들이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좀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많은 광장의 대규모 행사들이 주는 인상은 항상 알록달록하고 반짝거리는 조명, 때론 촛불이 주는 화려함이었다고 생각되었지만, 이곳 여의도 농민대회의 풍경만은 그와는 상반된 모습이었습니다.

광장을 가득 메운 농민대회



언제나 소박하고, 흙과 함께 이 땅의 생명주권을 지키는 그들의 집회 풍경은 다소 어두었습니다. 아니 흙빛과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풍물소리, 노래소리, 소주잔 기울이는 소리, 웃고, 울고 하며 진행되는 농민대회의 모습은 흙이 일어나고 흩어지고, 몰아치며, 다시 다져지는 듯한 느낌의 대회였습니다.

멀리서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운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나서 광장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곳에는 농민들의 지금 심정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었습니다. 쌀대란으로 폭락한 농업, 농민의 현실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알수 있었습니다. 생산원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농가부채만 늘리고, 농민들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농업을 규탄하며 상복을 입고 참가한 농민들


민주노동당이 뛰운 현수막



그러나 농민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만 하기위해, 정부와 국회에 항의만 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쌀대란과 농업말살의 위기를 극복할 슬기로운 대안이 있었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당장 매년 북으로 지원되던 인도적 쌀지원만 다시 재개되어도 농민들의 숨통은 조금 트일 것 같았습니다. 이전 정권 10년 동안 지원되던 매년 40여만톤의 쌀은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가마당 3천원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농민들을 위해 구성된 농협이 이자놀이에 매진하는 은행이 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농민의 조합으로 되어야 하는 것도 농민들은 대안으로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FTA로 인한 수입개방의 근본적 문제점에 대한 지적까지 농민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해결 방안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대북쌀지원을 통한 쌀대란 문제 해결은 장기적으로는 통일농업의 구축, 단기적으로도 폭락한 쌀값에 대한 회복으로 이어져 농민들의 근심을 크게 덜어줄 수 있는 처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해결책은 정부로서도 큰 비용없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농민들의 요구에 적극 부응해야 하는 정책이었습니다. 하지만 현 정권은 이러한 농민들의 요구를 들은척도 하지 않고 쌀과자 운운하는 수준으로 대응하니 농민들이 여의도에서 아스팔트 농사를 짓겠다고 올라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농민들이 현실이 담긴 그림을 가지고 나온 농민들



이날 농민대회에는 역시나 국회의원들과 정당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였습니다. 농민들은 그들에게 환호도 보내고 박수도 보냈지만, 그리 큰 기대를 거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정도가 그들에게는 진정이 있게 보이는 정도였습니다. 농민들은 그렇게 자신들 말고 다른 어디에도 기대를 크게 거는 모습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강기갑 의원



한 농민단체가 농민들이 털어버리고 싶은 것들을 탈곡 퍼포먼스를 하며 털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참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농가부채를 비롯하여 쌀대란, FTA, 농협 등 농민들이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 많았고,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할 일도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곡 퍼포먼스

탈곡 퍼포먼스



농민대회 마지막에 활활 타오르는 '쌀대란 해결' 불글씨 앞에서 농민회의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펄쩍 펄쩍 뛰던 농민들이 보였습니다. 분명 넘치는 분노를 표현할 길이 없어 깃발을 들고 그리 몸부림을 치지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쌀대란 해결


깃발을 들고 뛰던 농민들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자 기자들이 이를 담기 위해 몰려들었다.


농민들은 볏가마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농민들의 몸부림, 심정을 정부에서 직접 나와서 눈으로 보고, 만나본다면 그들 스스로도 얼굴 붉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를 여의도에서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국회와 한나라당을 향해 행진이 시작되었고, 슬기로운 대안을 제시한 농민들의 집회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농민들이 모두 빠져나간 여의도 광장은 그들이 남겨둔 마음의 짐마냥 무거운 풍경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광장을 벗어난 농민들의 힘찬 깃발은 여의도 곳곳에서 세차게 펄럭였습니다.

농민대회가 끝난 여의도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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